누군가가 말하기를 편지는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에 형성된 감정의 지형도(地形圖)라하였다.
특별히 사랑하는 연인들사이에 오고간 그 내밀한 사연들은 그들만이 해독 할수 있는 암호문이 아닐까싶다.
젊은날 ,아내와 오고갔던 그많은 사연의 글들은, 시간이라는 한조각 한조각의 파편속에 "함꼐 하였노라"는
정서적 기념품(Sentimental Souvenir)이자 내 젊은날 빛바랜 추억들이 숨쉬며 서성이는 간이역 이기도하다.
인생계절중 가장 스산하고 썰렁한 계절인 군인시절, 남산아래 위치한 수경사 사령부에서 계급이 5대 장성중에
하나라는 병장시절에 아내를 처음 만났다.
당시 아내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명동에 본사를 둔 어느회사의 새내기 경리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내의 콧대는 하늘 높은줄 몰랐고, 그놈의 눈은 눈섭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마팍 중턱에 붙을 만큼 도도했다.
게다가 그 철딱서니는 어찌 그리도 망나니었는지...
그러나 나는 이 야생 조랑말같은 톡톡튀는 아가씨를 기필코 기품있는 준마로 그리고 그 성품은 양순한
코알라(?)로 만들어 나의 아내로 맞으리라 결심헀다. 그꿈을 이루기위해 나는 사랑의 큐피트 화살을 코피가
터지도록 쉴사이없이 쏘아 올려야만 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그렇게 녹녹하지않았다.
병장 월급 3000원으로는 화살은 커녕, 커피 한잔 쏘기도 벅차기만 했다.
라일락 향기 짙어가던 화사한 오월 어느날, 나는그녀를 만나기로헀다. 이병장이랑 김일병한테 꾼 거금의
실탄(?)으로 단단히 무장한채, 보무도 당당하게 데이트길을 나섰다.
시장끼를 느낄즈음, 분위기 있는 Restaurant이 눈에 들어왔다 . 한번 분위기 잡아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저런집에서 한번 쏘면 밥값이 얼마나 나올까 ? 그 순간 비싼 밥값 때문에 개망신 당하는 내모습이 스쳐갔다.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투기성 짙은 그 고급집보다는 짜장면 먹는 안정성을 택하고 만것이다..
그 잘난 짜장면 한그릇 멕이고서는 주둥이는 짜장면 쏘스로 붉그죽죽하게 쳐발린채 의기도 양양하게
삼청공원을 올라갔다.
그날밤 ,삼청공원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이 온하늘에 보석을 뿌려 놓은듯 총총히 빛나고있었다.
상큼한 풀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바람소리, 물소리, 나뭇잎 갈리는소리가 한데 어우러저 그야말로 대자연의
오케스트라가되어 삼청골을 휘몰아치고 있었다.별빛조명 OK, 배경음악OK, 이제 남은것은 오직 "큐" 뿐이었다.
멜로드라마를 보면 이런 분위기에서는 달님같은 여인의 얼굴에 또다른 얼굴이 포개어지고 로멘틱한 클라이막스
로 치달아가야 하지않는가. 아, 그런데 나는 왜그리도 지지리 못낫는지.. 정말 유치 찬란한 한편의 코메디를
연출하고만 것이다. 그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미친듯 공중제비를 두세번 넘고, 그 많고도 많은 행동들 중에
무엇이 그리도 할짓이 없었던지 거꾸로 물구나무서서 아가씨를 향해 마구 달려갔던 것이다.
거의 광란(?) 수준에 버금가는 나의 황당한 몸짓에 그 아가씨는 배꼽이 떨어지도록 까르르 웃어대고말았다 .
이런 소란스런 와중에서도 그놈의 동전들은 나의체면도 아랑곳없이 바지주머니에서 볼썽 사납게 쏟아져
내리고있었다. 나를 부대까지 날라줄 그 피같은 버스비 동전들이 ....
가난한 군인이란 인생계절, 나는 가엾은 "삐에로"가 되어 돈한푼 들지않는 온몸 개그로 그녀를 기쁘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것이다.
나는 그날밤 차마 떨어지지않는 발길을 돌리며 내무반으로 돌아왔다.휘엉청 밝은달은 남산에 걸려있었고
눈부신 은빛 월광은 병영의 창을 사정없이 유린하며 침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도 밝았던 달빛에서 떨어져 나온 , 그 은빛 파편은, 그녀를 향한 속절없는 그리움이되어
나의 입술에 동그랗게 머물고있었다.
그날밤 날이 하얗게 새도록 삼청공원의 그꿈같은 기억을 되내이며 애끓는 시를 써내려갔다.
바로 그시가 우리의 열애사(熱愛史)에 길이 빛나는(?) "삼청골" 이라는 주옥같은 시가 된것이다.
삼청골, 그것은 바로 내젊은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녀를 향해 토해낸 월광곡이자 그녀에게 바친 헌시(獻詩)
였다. 그리고 그 월광곡은 감정의 지형도의 완성판이 되어 그 아가씨의 침실에 걸려지게되었다.
강산이 세번도 더 바뀐 지금 , 그도도했던 철부지 아가씨는 벌서 할머니가 되었다.
얼마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외손자가 드디어 등장헀기 때문이다 . 삼십여년전 한청년은 필살적인 (?)
공중제비로 가까스로 아가씨의 웃음보를 터뜨렸다.그러나 혜성같이 나타난 이녀석은 아무 의미없는 한번의
코끝 찡긋만으로도 아내는 숨이 넘어간다.
규버-어 -마아-- 아이고..내가 미쳐 아이고...우리규범이하면서. 딸의 홈피에 뜬 손자 모습에 하루에도
몇번씩 까무러치고 하루에도 몇번씩 졸도(?)한다. 30여년동안 그때 그아가씨 머리속을 전세낸 그 청년은
마침내 방을 뺄떄가 왔나보다. 여보 할멈 , 방 뻴테니 이겨울만이라도 참아줘 옛정생각해서라도...
이제 우리부부는 감정의 지형도(地形圖)가 없어도 "척"하면 삼척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네비게이러를 달고 천국을 향한 지형도 ,천국을 향한 순례도를 그리며 살고싶다.
우리 부부의 영혼의 탯줄인 기도의"네비게이러"를 달고 이웃의 아픔까지도 나의 아픔으로 공유하며 ,
하늘나라 도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나는 행복한 길손이 되고싶다.